아담이 눈 뜰 때

2008/01/21 23:14
장정일
아담이 눈 뜰 때
미학사
1990
내 나이 열아홉 살, 그 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
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
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완벽하게 인용하다.

카페

2008/01/18 17:00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
그녀가 이유도 없이 만나러 오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장화가 찢어지면 카페로 가자
월급이 4백 크로네인데 5백 크로네 쓴다면 카페로 가자
바르고 얌전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좋은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
언제나 자살하고 싶다면 카페로 가자
사람을 경멸하지만 사람이 없어 견디지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
이제 어디서도 외상을 안 해주면 카페로 가자

방랑작가 페터 알텐베르크

서핑 재팬

2007/08/05 18:10
카마쿠라고교 앞에서 서핑하는 걸 처음 보기 전까지 서핑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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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니 한 무리의 멸치 떼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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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다.

파도를 타는 시간은 무척 짧았다. 실력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작 2~3초 정도였을까.
그렇게 짧은 것을 위해 파도를 거슬러 헤엄쳐 나가 바다 속에 머무르는
사람들의 시간은 뭐랄까
일정한 속도로 흐를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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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변은 근처의 에노시마와 달리 비키니 아가씨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60년대 서프 앨범 커버에서 여자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것도 일종의 리얼리즘이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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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바다로 나가던 여성 서퍼가 있긴 했다.
강백호를 비롯해 수많은 만화와 영화에서 저 길에서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며
bondandy는 사진을 찍었다.

혁명을 팝니다

2007/05/18 00:59

혁명을 팝니다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마티



이적(다행이다) 홈페이지에서 본, 사실은 신문 서평에서 먼저 본 책 '혁명을 팝니다'.

히피나 펑크족이 대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반문화(counterculture) 이데올로기가 허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진보시키는 데 필요한 실천을 방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책 표지에는 스타벅스 로고와 체게바라 얼굴이 함께 인쇄되어 있는 커피컵이 자리하고 있다.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라고 묻고 있다.
체 게바라는 반문화주의자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반면 스스로 MTV와 롤링스톤(주류 록 미디어) 속으로 걸어들어갔던 커트 코베인은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가 신봉한 반문화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우리의 적인 '체제'의 메커니즘을 뚫고 들어가 그 내부에서부터 녹슬게 만들 수 있다. 저들의 게임에 참여하는 척 위장하여 제국에 사보타지를 가해 저들이 도전을 유발할 때까지만 타협을 한다. 그러면 곧 털투성이, 땀투성이의 성차별주의자 마초 바보들은 자기 자식들의 반란에서 흘러나온 면도날과 정액의 웅덩이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악습을 벗어던진 무장한 십자군인 이들은 월 가를 혁명의 잔해들로 흩뿌려 놓을 것이다."

커트 코베인은 방송국에서 립싱크를 해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나, 롤링스톤 커버 인물로
선정되었을 때 저런 생각으로 자기를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립싱크를 하며 "약을 장전하라, 친구들을 죽여라 (Load up on drugs, kill your friends)"(원래 가사는 "Load up on guns, and bring your friends "
)라고 가사를 달리 부르거나, 커버 사진을 찍으며 "기업 록 잡지는 여전히 구리다"(Corporate rock magazines still suck)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주류 문화의 심장부에서 훼방을 놓아 이 세계가 매트릭스와 같은 환영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혁명을 팝니다'(The Rebel Sell)에서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커트 코베인이 했던 말과 닮았다.

"매트릭스는 시스템이야, 네오. 시스템은 우리의 적이지. 시스템 내부에 있을 때 주위를 돌아보면 무엇이 보이지? 사업가, 교사, 변호사, 목수들이지. 우리가 구하려는 게 이 사람들의 정신이야. 하지만 그러기까지 이 사람들은 여전히 시스템의 일부이고 그래서 우리의 적이지. 이 사람들 대부분이 접속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길들여져 있고 너무도 무력하게 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싸울 걸세."

책을 쓴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는 모피어스의 이 말이 반문화주의자의 생각을 제대로
요약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일의 체제는 없다. 문화 혹은 체제가 없기 때문에 문화에 훼방을 놓을 수 없다. 모호하게 뭉뚱그려 말하자면, 때때로 우리가 공정하다고 인식하지만 대개는 명백히 불공정한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제도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반문화 반란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이고 확실히 비생산적이다."



흥미로운 소재(20세기 소비사회를 매혹시킨 반문화의 여러 유형)와 확실한 주제(반문화주의는 잘못되었다)를 밝히며 의기양양하게 시작되는 책이지만, 몇가지 사소한 오역이 눈에 띈다.

사소한 오역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데, 물론 나의 소심함 때문일 것이다.
독 마튼스(닥터 마틴 = Doc Martens), 장 보드리야드(장 보드리야르 = Jean Baudrillard) 같은, 정말 사소한 문제로 도저히 내가 발견할 수 없는 중대한 실수가 있지나 않을까 조바심 나게 한다면 이 것은 지나친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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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소년 공연 포스터 포상휴가


핫 하하핳
이 포스터를 보고 바로 마음 속에 떠오른 의성어

현재(4월 3일) 이 포스터의 게시물 조회수(재주소년 클럽)가 1910회인데
손님들 꽤 들었겠지?

물 그림

2007/03/22 16:19


역시 bondandy를 위한 참고 자료.
Youtube 비디오 어워드의 Creative 부문 후보작 중 하나인데
마신 물을 뱉어 그림을 그리는 일종의 구족화가라고나 할까?

영상 후반에 보면 음악이 힙합으로 바뀌는데, 바스키아 생각이 나더라.

백수생활백서

2007/03/13 23:17

박주영, '백수생활백서', 민음사, 2006

우리 삶의 대중문화 노출 빈도는 상당하다.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TV, 영화, 책, 무가지, 메트로, 네이버 같은 것을 소비하며 보낸다. 요즘 사람들이 사는 방법은 왠지 즐긴다, 음미한다, 떼운다, 보낸다도 아닌 소비한다가 잘 어울린다. 비록 땡전 한푼 내지 않더라도 시간 따위도 돈으로 환산하려는 버릇이 싹트고 있으니.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중이 있고 그들의 생태를 경작하는 문화가 있다.

나는 백화점에 가서 테스토니의 붉은 에나멜 플랫 슈즈를 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우울해질 때마다 빨간색 구두를 꺼내어 신어보곤 했다.'라는 문장을 썼다.
계속해서 쓸 수 있기를. 내 소망이 단순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p.330, 작가의 말 중에서)

'백수생활백서'는 대중문화 속에서 삶을 소비하는 세대의 글 쓰는 방식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많은 소설과 영화가 인용되고 또 영화와 소설을 소비하는 도시의 삶이 인용된다. 마치 대중문화 인상비평, 독서일기 같은, 본격적인 소설이 아닌 것만 같다. 그런 면에서 "이런 게 소설이라면 나도 쓰겠다"는 지인들의 평가를 들어야 했던, 하루키의 데뷔작처럼 '백수생활백서'는 만만해 보인다. 그만큼 독자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는 세상의 속도를 무시한 나 자신만의 속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책과 마주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속도이다.
같은 페이지의 책도 저마다 다른 속도로 읽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나 다시,
또 새롭게.
(p.327)

백수생활백서
박주영 지음/민음사

헬로 아이폰

2007/02/26 19:00


아이폰의 첫 번째 광고라고 한다. bondandy가 좋아할 것 같은 영상이다.
존 콜트레인은 알고 또 좋아해도, 앨리스 콜트레인(Alice Coltrane)은 처음 알았다.
어제는 그녀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69세. 2007-01-15)

앨리스는 존 콜트레인의 아내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나만 몰랐겠지만 재즈 피아니스트였다.
존의 사후 파라오 샌더스, 조 헨더슨, 아치 셰프 같은 나도 아는 인물들과 음악을 했다고 하니
나름대로 대단한 뮤지션이었던 것 같다. (재즈 저널들은 그녀를 오노 요코에 비유하기도 했다고)
예전에 '존 콜트레인 - 재즈, 인종차별, 그리고 저항'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앨리스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 같지는 않다.

존 콜트레인
마틴 스미스 지음, 서찬석.이병준 옮김/책갈피

책을 읽고 써본 글이 있다. 서평도 아니고, 뭔지 모르겠다. 지금 보니...
제목은 '저항과 반역, 그리고 청년 재즈'였다.

‘너무 어려워서…’라며 겸손한 이유를 들곤 하지만 사실 재즈를 듣지 않는 사람들의 속 마음은 ‘내 취향은 아니야’가 아닐지. 10년 전의 민망한 차인표가 떠오르는 느끼한 색소폰 연주, 혹은 참을 수 없이 현란한 즉흥 연주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 정말 한가하고 (경제적인) 여유 있는 자들만이 재즈에 관심을 갖고 있는 걸까? 재즈 역사 1백년, 나이를 잡수시긴 했다. 그도 청년 시절이 있었고, 그때는 록(rock) 못지 않은 반골이었다. 저항의 음악하면 록이나 힙합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최초의 영향력 있는 저항적 대중음악은 빌리 홀리데이가 노래했고 그건 재즈 보컬 음악의 고전 이었다.

“남부의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린다. 잎사귀와 뿌리에는 피가 흥건하고, 남부의 따뜻한 산들바람에 검은 몸뚱이들이 매달린 채 흔들린다. 포플러 나무에 열려 있는 이상한 열매들(Strange Fruit).” 은 반항하거나 도망치는 흑인 노예를 나무에 목매달았던 미국 백인들의 잔인한 관행을 묘사한 노래다. 가사는 유대계 백인 교사 아벨 미어러폴(Abel Meeropol)이 지었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에 대한 노래이기도 할 것이다.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찰리 파커, 디지 길레스피 등 재즈의 거장들이 극심한 인종 차별 속에 재즈를 예술로 발전시켰다. ‘백인들이 무시하는 흑인들이 이처럼 훌륭한 예술을 창조한다’라는 선배들의 소극적인 의미의 저항은 1950년대 들어 적극적으로 변했다. 아트 블레키, 존 콜트레인, 맥스 로치, 소니 롤린스 등은 하드밥(hardbop)이라는 이름으로 차별에 반대하고 권리를 주장했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재즈 스타일인 하드밥은 쿨(cool)보다 조금 늦게 등장해서 좀더 긴 생명력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어쩌면 프리 재즈나 퓨전 같은 이례적인 현상을 제외한다면 그 영향력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쿨 재즈가 비밥의 양식미를 차분하게 발전시켰다면 하드밥은 비밥의 좀더 직접적인 계승자라고 할 수 있다. 쿨이 클래식적인 편곡과 절제된 연주를 도입하면서 재즈를 세련화한 측면은 긍정적일 수도 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백인 연주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쿨 재즈였기 때문에 흑인의 예술로서의 재즈의 위상에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한 연주자들도 많았다. 쿨을 창조했다고 평가받는 마일스 데이비스도 곧 이 스타일에서 벗어난다. 또한 웨스트 코스트를 기반으로 활동한 쿨 재즈 연주자들은 근처의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원하는 연주를 예술적인 각성 없이 제조하기도 했다. 하드밥은 1950년대 초반 재즈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뮤지션들을 통해 출현하게 된다. 비밥의 뜨거운 솔로 연주법을 계승하면서 좀더 넓은 음계의 사용과 집단 즉흥 연주 등의 새로운 개념을 도입했다. 특히 가스펠, 소울, 훵크 등 흑인 문화의 정수를 재즈의 언어로 끌어들였는데, 이는 당시 시대의 현상과 사상을 반영한 것이었다. 재즈는 그리 한가로운 음악이 아니다.

지독한 반공주의를 앞세워 사회주의라고 의심되거나 반체제적인 사람들의 활동을 저지하려고 했던 (매카시즘의) 미국. 당시 흑인들의 권리 찾기 역시 가장 반미국적인 행동이었다. 버스에서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타 당한 흑인 여성, 흑인에게 음식을 팔지 않는 백인 전용 레스토랑, 심지어 연주하러 들어가는 흑인 재즈 뮤지션 조차 뒷문으로 출입해야 했던 클럽도 있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인종 차별을 겪던 흑인들에게 마틴 루터 킹이 말하기 시작했고 말콤 엑스가 행동을 개시한 때가 바로 이 때였다. 재즈 뮤지션들은 흑인의 자긍심을 찾기 위해 뿌리 찾기에 나섰다. 아트 블레키는 하드밥을 일컬어 “뿌리찾기 운동”이라고 말했다. (흑인 고유의 것), (‘Nigeria’를 거꾸로 쓴 것), (해방을 위한 시간), (해방의 시간) 등 은유적이긴 했지만 모두 흑인의 긍지를 보여주는 곡들로 이 같은 음악은 57년과 62년 사이에 수백곡이 발표되었다. 소니 롤린스, 맥스 로치, 애비 링컨, 찰스 밍거스는 특히 정치적인 입장을 분명히 한 뮤지션들로 심한 탄압을 받았다. 애비 링컨은 「We Insist! Freedom Now Suite」을 녹음하고 10년간 단 한 차례의 레코딩 제의도 받지 못했다. 하지만 밥 딜런과 김민기와 마찬가지로, 퍼블릭 에너미와 투팍과 함께, 하드밥은 이 시대를 여전히 밝히고 있다(고 믿는다).

편집증

2006/12/23 01:03

방송인 정지영의 '마시멜로 이야기'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관계된 모든 세상사가 그러하듯 출판계에도 문제점이 있다.
지난 해 연말에는 사재기 파문이 일었고, 올 연말에는 대필 파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생산적인 논의가 늘어날 것이고, 출판계 입장에서도 결국 진보를 위한 아픔의 시간이었다며 느긋하게 지난날을 회상할 날이 오리라 믿어의심치 않지만,

아직은 "마녀사냥"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이상의 기사나 특히 댓글은 읽고 싶지 않다.

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는데, 한마디 하려면 한번쯤 생각해 보고 하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계기가 될 만한 글을 소개한다.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레코드 앨범은 대중문화의 주요 대상이자 경험으로 자리잡아왔다. 싱글이 잡지나 텔레비전 쇼 같은 것이라면 앨범은 책이나 영화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어느 정도의 비중과 영향력을 지닌다. '대부'나 'Thriller',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모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뮤지션이 앨범을 만드는 일이란 작가나 영화감독이 직면하는 그것과 똑같은 도전을 의미한다. 모두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고, 부와 명성에 대한 야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종종 여러 사람이 협력한 결과물이지만 앨범에는 전체적인 책임을 지는 한 사람-반드시 리드 싱어나 리드 플레이어인 것은 아니다-이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대개는) 제작과정을 감독하는 프로듀서가 있다. 책과 영화처럼 앨범도 익숙한 형식을 취하거나 잘 알려진 장르로 쉽게 분류할 수도 있으며, 그러면서도 신선한 내용과 독창적인 스타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마이클 라이든,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2006 中)


자신이 쓴 글의 토씨 하나 구둣점 하나 고치지 못하게 하는 작가도 있다. 그러나 책도 제작 시스템을 갖춘 대중문화 콘텐츠의 하나이며, 그 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지고 분업화 되어가고 있다. 책이란 것은 개인적인 노작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수는 있겠지만, 여러사람의 힘이 적절한 시스템 속에서 발휘되어 좋은 결과를 내는 일이 어찌 공업이나 농업만의 일이 겠는가? 같은 대중문화 영역의 영화가 여러 사람의 노작임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데, 아직 음악의 경우에도 그렇지만(싱어송라이터만을 예술가로 대우하는 관행) 책의 경우에도 실제 제작 환경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내 주변에는 출판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몇 있다. 원고를 교정 보고, 디자인 컨셉트를 조율하고,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언론과 서점 홍보를 위해 애정과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영화판에서 밤을 지새우는 스탭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스탭들이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면서 그토록 바라는 것이 좋은 영화이듯, 편집자는 좋은 책을 기대한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빈 팝콘상자를 치우는 시간 그들의 이름이 까만 화면 위로 하얗게 찍혀 올라간다. 편집자도 좋은 책 뒤에 작은 이름 하나 남길 뿐이다. 자취가 작다고 해서 역할이 작지는 않다. 저자는 창작자고 편집자는 잡부인 것이 아니다. 또한 편집자의 노력이 돈만을 위한, 베스트셀러만을 노린 것도 아니다.

신문사에는 '데스크'라는 개념이 있다. 아마 편집장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편집장은 기자의 기사를 검토하여 '편집'한다. 편집이란 두 글자는 중요도에 따른 지면 결정과 제목 선정 혹은 수정, 발문, 원고 첨삭 등의 활동을 의미한다. 아닌가? (어떤 기자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책이란 제품이자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좀더 투명하게 알려지고 공개된다면 지금의 오바 현상이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정당한 편집자의 활동, 제작 과정까지 대필이니 대리번역이나 하는 말로 호도되어서는 않된다. 그러나 그럴 조짐도 보이고, 그래서 조심하는 분위기다. (식상한 얘기지만, 이번 일로 모든 출판인이 매도되어서는 안되며 그들의 열의를 꺽어서도 안된다는... ㅡ.ㅡ;;)

오바의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앞서 소개한 '명반 1001장' 책이 재판에 들어가면서 표지에 공동 번역자 이름 전원을 넣겠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로버트 다이머리 지음, 한경석 옮김/마로니에북스

(좋은 책이다. 아무튼 표지를 보면 현재 '한경석 외 역'이라고 되어 있는데, 공동 번역자 6인의 이름을 다 인쇄하는 것으로 교정해 2쇄를 찍기로 했다는 최신 내부 정보. 공동 번역자의 이름은 모두 책 날개에 적혀 있고, 그들은 많지는 않지만 약속한 금액을 지불 받았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 없었다는 말.)

참고로 一事一言은 하나의 사물에 하나의 말이라는 뜻으로, 하나의 대상을 나타내는 가장 정확한 말을 이르는 말(국립국어원)이며 조선일보 칼럼명이기도 하다. 쓰다보니 삼사일언, 일사일언은 커녕 중언부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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