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 눈 뜰 때
미학사
1990
내 나이 열아홉 살, 그 때 내가 가장 가지고 싶었던 것은 타자
기와 뭉크화집과 카세트 라디오에 연결하여 레코드를 들을 수
있게 하는 턴테이블이었다. 단지, 그것들만이 열아홉 살 때 내
가 이 세상으로부터 얻고자 원하는, 전부의 것이었다.
완벽하게 인용하다.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
그녀가 이유도 없이 만나러 오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장화가 찢어지면 카페로 가자
월급이 4백 크로네인데 5백 크로네 쓴다면 카페로 가자
바르고 얌전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용서가 되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좋은 사람을 찾지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
언제나 자살하고 싶다면 카페로 가자
사람을 경멸하지만 사람이 없어 견디지 못한다면 카페로 가자
이제 어디서도 외상을 안 해주면 카페로 가자
방랑작가 페터 알텐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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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을 팝니다 조지프 히스.앤드류 포터 지음, 윤미경 옮김/마티 |
이적(다행이다) 홈페이지에서 본, 사실은 신문 서평에서 먼저 본 책 '혁명을 팝니다'.
히피나 펑크족이 대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반문화(counterculture) 이데올로기가 허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 진보시키는 데 필요한 실천을 방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고 지적한다.
책 표지에는 스타벅스 로고와 체게바라 얼굴이 함께 인쇄되어 있는 커피컵이 자리하고 있다.
"체 게바라는 왜 스타벅스 속으로 들어갔을까?"라고 묻고 있다.
체 게바라는 반문화주의자는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반면 스스로 MTV와 롤링스톤(주류 록 미디어) 속으로 걸어들어갔던 커트 코베인은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 그가 신봉한 반문화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우리의 적인 '체제'의 메커니즘을 뚫고 들어가 그 내부에서부터 녹슬게 만들 수 있다. 저들의 게임에 참여하는 척 위장하여 제국에 사보타지를 가해 저들이 도전을 유발할 때까지만 타협을 한다. 그러면 곧 털투성이, 땀투성이의 성차별주의자 마초 바보들은 자기 자식들의 반란에서 흘러나온 면도날과 정액의 웅덩이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악습을 벗어던진 무장한 십자군인 이들은 월 가를 혁명의 잔해들로 흩뿌려 놓을 것이다."
커트 코베인은 방송국에서 립싱크를 해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나, 롤링스톤 커버 인물로
선정되었을 때 저런 생각으로 자기를 설득해야 했다.
그리고 립싱크를 하며 "약을 장전하라, 친구들을 죽여라 (Load up on drugs, kill your friends)"(원래 가사는 "Load up on guns, and bring your friends ")라고 가사를 달리 부르거나, 커버 사진을 찍으며 "기업 록 잡지는 여전히 구리다"(Corporate rock magazines still suck)이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었다. 주류 문화의 심장부에서 훼방을 놓아 이 세계가 매트릭스와 같은 환영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혁명을 팝니다'(The Rebel Sell)에서 영화 '매트릭스'의 모피어스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커트 코베인이 했던 말과 닮았다.
"매트릭스는 시스템이야, 네오. 시스템은 우리의 적이지. 시스템 내부에 있을 때 주위를 돌아보면 무엇이 보이지? 사업가, 교사, 변호사, 목수들이지. 우리가 구하려는 게 이 사람들의 정신이야. 하지만 그러기까지 이 사람들은 여전히 시스템의 일부이고 그래서 우리의 적이지. 이 사람들 대부분이 접속을 끊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길들여져 있고 너무도 무력하게 시스템에 의존하기 때문에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싸울 걸세."
책을 쓴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는 모피어스의 이 말이 반문화주의자의 생각을 제대로
요약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잘못되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통합하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단일의 체제는 없다. 문화 혹은 체제가 없기 때문에 문화에 훼방을 놓을 수 없다. 모호하게 뭉뚱그려 말하자면, 때때로 우리가 공정하다고 인식하지만 대개는 명백히 불공정한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제도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세상에서 반문화 반란은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이고 확실히 비생산적이다."
흥미로운 소재(20세기 소비사회를 매혹시킨 반문화의 여러 유형)와 확실한 주제(반문화주의는 잘못되었다)를 밝히며 의기양양하게 시작되는 책이지만, 몇가지 사소한 오역이 눈에 띈다.
사소한 오역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데, 물론 나의 소심함 때문일 것이다.
독 마튼스(닥터 마틴 = Doc Martens), 장 보드리야드(장 보드리야르 = Jean Baudrillard) 같은, 정말 사소한 문제로 도저히 내가 발견할 수 없는 중대한 실수가 있지나 않을까 조바심 나게 한다면 이 것은 지나친 낭비다.
재주소년 공연 포스터 포상휴가
박주영, '백수생활백서', 민음사, 2006
우리 삶의 대중문화 노출 빈도는 상당하다. 깨어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TV, 영화, 책, 무가지, 메트로, 네이버 같은 것을 소비하며 보낸다. 요즘 사람들이 사는 방법은 왠지 즐긴다, 음미한다, 떼운다, 보낸다도 아닌 소비한다가 잘 어울린다. 비록 땡전 한푼 내지 않더라도 시간 따위도 돈으로 환산하려는 버릇이 싹트고 있으니.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대중이 있고 그들의 생태를 경작하는 문화가 있다.
나는 백화점에 가서 테스토니의 붉은 에나멜 플랫 슈즈를 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녀는 우울해질 때마다 빨간색 구두를 꺼내어 신어보곤 했다.'라는 문장을 썼다.
계속해서 쓸 수 있기를. 내 소망이 단순해서 아주 마음에 들었다.
(p.330, 작가의 말 중에서)
'백수생활백서'는 대중문화 속에서 삶을 소비하는 세대의 글 쓰는 방식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많은 소설과 영화가 인용되고 또 영화와 소설을 소비하는 도시의 삶이 인용된다. 마치 대중문화 인상비평, 독서일기 같은, 본격적인 소설이 아닌 것만 같다. 그런 면에서 "이런 게 소설이라면 나도 쓰겠다"는 지인들의 평가를 들어야 했던, 하루키의 데뷔작처럼 '백수생활백서'는 만만해 보인다. 그만큼 독자들을 솔깃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나는 세상의 속도를 무시한 나 자신만의 속도를 갖고 있다.
그것은 책과 마주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속도이다.
같은 페이지의 책도 저마다 다른 속도로 읽을 수밖에 없다.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그리고 원한다면 언제나 다시,
또 새롭게.
(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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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생활백서 박주영 지음/민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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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콜트레인 마틴 스미스 지음, 서찬석.이병준 옮김/책갈피 |
방송인 정지영의 '마시멜로 이야기'로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관계된 모든 세상사가 그러하듯 출판계에도 문제점이 있다.
지난 해 연말에는 사재기 파문이 일었고, 올 연말에는 대필 파동이 본격화되고 있다.
좀더 시간이 지나면 생산적인 논의가 늘어날 것이고, 출판계 입장에서도 결국 진보를 위한 아픔의 시간이었다며 느긋하게 지난날을 회상할 날이 오리라 믿어의심치 않지만,
아직은 "마녀사냥"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더이상의 기사나 특히 댓글은 읽고 싶지 않다.
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는데, 한마디 하려면 한번쯤 생각해 보고 하라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하는 계기가 될 만한 글을 소개한다.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레코드 앨범은 대중문화의 주요 대상이자 경험으로 자리잡아왔다. 싱글이 잡지나 텔레비전 쇼 같은 것이라면 앨범은 책이나 영화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어느 정도의 비중과 영향력을 지닌다. '대부'나 'Thriller', '브리짓 존스의 일기'는 모두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뮤지션이 앨범을 만드는 일이란 작가나 영화감독이 직면하는 그것과 똑같은 도전을 의미한다. 모두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고, 부와 명성에 대한 야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종종 여러 사람이 협력한 결과물이지만 앨범에는 전체적인 책임을 지는 한 사람-반드시 리드 싱어나 리드 플레이어인 것은 아니다-이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대개는) 제작과정을 감독하는 프로듀서가 있다. 책과 영화처럼 앨범도 익숙한 형식을 취하거나 잘 알려진 장르로 쉽게 분류할 수도 있으며, 그러면서도 신선한 내용과 독창적인 스타일로 우리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마이클 라이든, '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2006 中)
자신이 쓴 글의 토씨 하나 구둣점 하나 고치지 못하게 하는 작가도 있다. 그러나 책도 제작 시스템을 갖춘 대중문화 콘텐츠의 하나이며, 그 시스템은 점점 정교해지고 분업화 되어가고 있다. 책이란 것은 개인적인 노작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할 수는 있겠지만, 여러사람의 힘이 적절한 시스템 속에서 발휘되어 좋은 결과를 내는 일이 어찌 공업이나 농업만의 일이 겠는가? 같은 대중문화 영역의 영화가 여러 사람의 노작임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데, 아직 음악의 경우에도 그렇지만(싱어송라이터만을 예술가로 대우하는 관행) 책의 경우에도 실제 제작 환경에 대한 일반의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내 주변에는 출판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몇 있다. 원고를 교정 보고, 디자인 컨셉트를 조율하고,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고, 언론과 서점 홍보를 위해 애정과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영화판에서 밤을 지새우는 스탭의 모습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스탭들이 박봉과 격무에 시달리면서 그토록 바라는 것이 좋은 영화이듯, 편집자는 좋은 책을 기대한다.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빈 팝콘상자를 치우는 시간 그들의 이름이 까만 화면 위로 하얗게 찍혀 올라간다. 편집자도 좋은 책 뒤에 작은 이름 하나 남길 뿐이다. 자취가 작다고 해서 역할이 작지는 않다. 저자는 창작자고 편집자는 잡부인 것이 아니다. 또한 편집자의 노력이 돈만을 위한, 베스트셀러만을 노린 것도 아니다.
신문사에는 '데스크'라는 개념이 있다. 아마 편집장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편집장은 기자의 기사를 검토하여 '편집'한다. 편집이란 두 글자는 중요도에 따른 지면 결정과 제목 선정 혹은 수정, 발문, 원고 첨삭 등의 활동을 의미한다. 아닌가? (어떤 기자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책이란 제품이자 문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좀더 투명하게 알려지고 공개된다면 지금의 오바 현상이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정당한 편집자의 활동, 제작 과정까지 대필이니 대리번역이나 하는 말로 호도되어서는 않된다. 그러나 그럴 조짐도 보이고, 그래서 조심하는 분위기다. (식상한 얘기지만, 이번 일로 모든 출판인이 매도되어서는 안되며 그들의 열의를 꺽어서도 안된다는... ㅡ.ㅡ;;)
오바의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아닐까? 앞서 소개한 '명반 1001장' 책이 재판에 들어가면서 표지에 공동 번역자 이름 전원을 넣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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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들어야 할 앨범 1001 로버트 다이머리 지음, 한경석 옮김/마로니에북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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