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노래

2009/03/27 08:44

소리는 제가끔의 길이 있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김훈, <현의 노래>에서


현의 노래 - 10점
김훈 지음/생각의나무


<칼의 노래>만 해도 그저 수사학이려니 했지만, 현의 노래에 대해 쓰는 작가에게 노래라는 것이 그저 말뿐일 수는 없다. <현의 노래>를 낼 즈음 월간조선인터뷰에 음악과 김훈의 관계에 대한 중요한 언급이 보인다.


문체는 완전히 제가 새로 만든 거죠. 전에는 제가 진양조 같은 24박자 짜리 문체를 썼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완전히 두 박자죠. 주어와 동사만 가지고 썼으니까. 문장을 뼉다귀만 가지고 쓴 거죠. 살은 다 빼버리고. 그런데도 그 문체를 보고 또 수사학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한국인이 역사적으로 그런 문장을 썼던 일이 없었는데 그걸 제가 만든 거죠. 내가 생각해도 엄청나요! 그 문체로 그 소설을 끝까지 써낸 거죠.”

<칼의 노래>에서 작가로서 역점을 둔 건 뭐였냐는 질문에 대한 김훈의 답이다. 이 무렵 <현의 노래>를 집필하던 김훈의 서재에는 한국 고전음악에 대한 다양한 책이 꼽혀 있었다고 한다.


늘 새로움으로 덧없는 것이고, 덧없음으로 늘 새롭다.” 이 얼마나 멋스러운 문장인가. 이 멋 때문에 사람들은 그에게 매료되고 또 비판한다. 그의 장점이자 약점이다. 끝을 맺기 어려운 도드리의 음악 세계와 같다. 작품마다 변주되는 김훈의 도드리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희망은 없거나, 있다면 오직 죽음 속에 있을 것만 같았다.”(칼의 노래),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아니면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남한산성)


작가는 세계가 그리 간단명료치 않다고 보기 때문에 이처럼 불완전한 언설에 매달린다. 역사란 본질적으로 주류 승자의 것일진데, 그렇다면 김훈은 회의주의자이자 반역사주의자다. 많은 비판 속에서도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뭘까? “국가의 목적은 부국강병뿐이라고 말한 건 이문열이 아니라 김훈인데도.


용산의 불을 보자. 우리는 도덕적인 가치나 경제적인 판단 중 어느 하나의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어느 한쪽의 승리로 그 불길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김훈처럼 오늘의 현실을 몸부림에 가까운 냉철함으로 드러내는 작가를 찾아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은 김훈과 함께 남한산성에 스스로 가두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화나 소설을 보고 나서 한동안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주윤발마냥 성냥개비를 물고 다니는 소년처럼, 김훈 흉내를 내다 난삽한 문장을 쓰고 있다. 변명하자면 그의 글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매료될 만한 것이다.글은 몸속의 리듬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악보”(바다의 기별)라고 단언하는 매우 음악적인 작가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글이 해금의 소리를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소리를 주무를 수 있는 자들은 얼마나 복된가.”(바다의 기별)


해금은 두가닥 줄을 활로 켜서 소리를 내는, 참 볼품없는 악기로 한 때 깽깽이로로 불리기도 했다. 서양에 피아노의 과학이 있다면 동양에는 해금의 불완전성이 있다고 하면 오리엔탈리즘일까? 자유라고 해두자. 해금은 한국 음악의 유장함을 대표하는 악기다. 김훈 문장의, 곧 그가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관과 유사한 수사학의 악기이다. 김훈의 문학이 대중성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학이 될 수도 있을까? 글 조용범

『문 체는 완전히 제가 새로 만든 거죠. 전에는 제가 진양조 같은 24박자짜리 문체를 썼거든요. 그런데 여기선 완전히 두 박자죠. 주어와 동사만 가지고 썼으니까. 문장을 뼉다귀만 가지고 쓴 거죠. 살은 다 빼버리고. 그런데도 그 문체를 보고 또 수사학적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한국인이 역사적으로 그런 문장을 썼던 일이 없었는데 그걸 제가 만든 거죠. 내가 생각해도 엄청나요! 그 문체로 그 소설을 끝까지 써낸 거죠』

김훈이 칼의 노래에 대하여
글이란 무엇이냐. 글을 왜 읽냐. 책은 꼭 읽어야 되나. 그래야 세상을 살아갈 수 있나?
글을 쓰는 일이 음식 만드는 일보다 중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족대표 33인의 독립선언서가 우리를 독립시켰을까? 인과관계가 분명하지가 않다.
그럼 원자폭탄? 종지부를 찍었다는 점에서 자명하다.

작가 김훈이 TV에 나와 "제발 책 좀 읽으라고 하지마라. 필요하면 다 알아서 읽게 되어 있다"고
했다지. 그는 목수처럼 못질하지 못하는 것이 부끄럽지
자본론 각주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은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남한산성'의 도입은 말(言)이다.
조정의 말이 중국의 새로운 제국 청의 대군을 조선 땅으로 불러들였고,
서울을 버리고 강화로 가야 서울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말을 불렀고,
결국 조선의 말보다 재빠른 청의 말(馬)이 길을 막자 어가를 남한산성으로 돌려
스스로 갇힐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말하고 있다.
언어에 대한 지극히 회의적인 시각을 맞딱뜨리게 된다.

하지만 '남한산성'에 갇혀버린 조정에게 말은 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
청과 싸워 이길 수 없었지만 싸움을 말해야 했고, 안에서 끝까지 말라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모순된 언어의 세계에나 있을 법한 일이 실제하게 된다.
남한산성의 조정은 말라갈 수록 언어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백성들에게 환궁 후 갚겠다는 약속으로 곡식과 재물을 빌리고, 지방 관군을 부르는
임금의 격문을 전달하기 위해 목숨을 걸 사람이 필요했다.)

"삶 안에도 죽음이 있듯, 죽음 안에도 삶은 있다"('남한산성'의 김상헌)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할 때 세상의 더러움에 치가 떨렸고,
세상의 더러움을 말할 때는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까워서 가슴 아팠다."('밥벌이의 지겨움')

김훈은 모순된 세상의 이치를 지겹도록 변주해 글을 써낸다.
더는 쓰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꾸역꾸역 쓴다.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써 세상을 읽을 수 없"('남한산성' 작가의 말)다고 하면서도
그는 쓴다.
땅위로 뻗은 길 위를 걸어갈 수밖에 없듯이, 쓰는 것도 그러한 걸까.

왜? 그는 왜 쓰는가?

"세상의 길바닥에 있는 게 길이지요. 책 속에 길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길이 세상의 길바닥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되잖아요. 책 속에 있다는 길과 속세에 있는 땅바닥의 길을
어떻게 연결시켜 걸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지식인의 과제이고, 고민이고, 고통인 것이죠.
책 속에 길이 있다면 매우 행복할 거에요. 책만 읽으면 될 테니까."
(교보문고 '사람과 책' 인터뷰에서 김훈)

그리고 그는 웃었다. 노년의 작가는 남한산성 같다.

남한산성
김훈 지음/학고재

BLOG main image
푸훗!한 음악 by slowtry

공지사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7)
New Music (43)
cult.ure (17)
(22)
마포fm 마음가는대로 (3)
re.port (1)
편집증 (11)
무단전재및재배포 (4)

글 보관함

달력

«   2010/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